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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는 왜 마포대교를 점거했을까요?

지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2017 건설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를 마친 전국건설노동조합 노조원들이 청와대를 향한 행진을 위해 마포대교를 점거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2017 건설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를 마친 전국건설노동조합 노조원들이 청와대를 향한 행진을 위해 마포대교를 점거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28일 저녁 퇴근 시간 때 민주노총 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소속 조합원 2만명이 서울 마포대교를 점거한 것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건설노조는 하루 뒤 입장문을 내어 “본의 아니게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퇴근길 통행에 불편을 드려 가슴 깊이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시민 불편으로 인한 채찍질,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사과했습니다만, 문재인 정부 들어 첫번째 ‘불법집회’라는 딱지가 붙었습니다. 노조 비판여론도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찰은 관련법 위반 여부에 관한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건설노조는 왜 이런 ‘불법행위’를 하게 됐을까요? 요약하자면,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고용노동소위)에서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건설근로자법) 개정안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습니다.

건설근로자법 개정은 건설노조를 비롯한 노동계의 ‘숙원’으로 꼽힙니다. 지난 11일부터 건설노조 조합원 2명은 건설근로자법 개정을 요구하며 18일째 여의2교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이었습니다. 전재희 건설노조 선전실장은 ‘마포대교 점거’ 때문에 “1년 동안 받을 전화를 다 받았다”고 합니다. 그 질문은 거의 다 “건설근로자법이 뭡니까”였다고 합니다. 건설근로자법과 마포대교 점거의 상관관계를 차근차근 따져보겠습니다.



■건설근로자법


건설근로자법은 “건설근로자의 고용안정과 직업능력의 개발·향상을 지원·촉진하고 건설근로자에게 퇴직공제금을 지급하는 등의 복지사업을 실시함으로써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과 복지증진을 도모하고 건설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입니다.

퇴직공제금은 건설노동자한테 퇴직금에 해당합니다. 계절·경기에 따라 일자리가 들쭉하고, 대다수가 일용직인 건설노동자의 사회보장 차원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건설공사를 발주한 사업주가 자신의 현장에서 일한 노동자 명의의 공제부금을 하루 단위로 건설근로자공제회(공제회)에 납부하면, 이곳저곳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이 돈을 나중에 받게 됩니다. 현재 하루당 4200원(200원은 공제회 운영기금으로 쓰임)으로, 252일 이상 적립한 사람이 건설업에서 퇴직·사망하거나 만 60살이 되면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설계돼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루 적립액이 2008년부터 9년 동안 한 번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이 액수는 대통령령에 따라 1일 1천~5천원 범위에서 공제회가 고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공제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건설노동자의 연간 평균 노동일수가 149일로, 하루 4천원을 곱하면 1년에 60만원이 채 안 되는 액수가 나옵니다. 일반 노동자가 1년을 일하면 한달치 임금을 퇴직금으로 받을 수 있는데요, 건설노동자의 일당을 적게 잡아 10만원으로 보고 1년 노동일수 149일로 곱한 뒤 12달로 나누면 대략 120만원이 나옵니다. 현재 적립되는 퇴직공제금이 일반 노동자의 절반도 안 되는 셈인 거죠. 게다가 252일 이상을 적립해야 공제부금을 받을 수 있어, 252일 미만인 사람들은 적립하고도 돈을 못 찾아가는 문제가 생깁니다.

다른 문제점도 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이들 가운데 근로기준법의 ‘노동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굴삭기·덤프트럭·레미콘 등 건설기계를 운전하는 기사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로 분류됩니다. 물론 기계를 여러 대 구매해 사람을 쓰는 ‘사용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용부 통계를 보면 영업용 건설기계 24만6천대 가운데 절반을 넘는 12만8천대는 모두 ‘1인 사업자’가 운전합니다. 즉 이들도 ‘특수고용노동자’로 사실상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데, 퇴직공제 대상에는 제외되고 있습니다.

건설근로자법 개정안은 이런 문제점 때문에 발의됐습니다. 정부 1건, 여당 의원 3건으로 지금까지 언급돼왔던 문제점을 고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퇴직공제부금 일액을 최저액을 5천원으로 인상 △건설기계 1인 사업주 퇴직공제부금 적용 등 내용입니다. 여기에 더해 임금체불을 방지하기 위해 공사금액에서 임금을 따로 떼 다른 도급비용과 분리해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나, 퇴직공제부금을 적립하지 않는 사용자를 막기 위해 노동자들의 ‘전자카드’로 처리하자는 내용도 개정안에 있습니다. 이 내용은 그동안 건설노조가 수년째 요구해왔던 것들이기도 합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이영철 수석부위원장(왼쪽)과 정양욱 광주전남건설기계지부장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2교 인근 30m 광고탑에 올라 `노동기본권 쟁취!'라고 적힌 대형 펼침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이영철 수석부위원장(왼쪽)과 정양욱 광주전남건설기계지부장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2교 인근 30m 광고탑에 올라 `노동기본권 쟁취!'라고 적힌 대형 펼침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근로기준법 ‘간사합의안’의 불똥


사실 이 법안에 관한 여야간 이견은 크지 않았던 전해집니다. 워낙 노동계의 숙원이었던 데다, 자유한국당에도 한국노총 출신 의원들이 둘이나 됐기 때문입니다. 한국노총 출신이자 고용노동소위 위원장인 임이자 한국당 의원은 지난 21일 건설노조의 농성장을 찾아가 “고용노동소위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8일 고용노동소위에서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원인을 따져보면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간 이견이 불씨가 됐습니다. 지난 23일 고용노동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한국당·국민의당 간사합의안이 ‘휴일·연장근로수당 중복할증을 뺀 개악안’이라는 여당 의원 일부와 이정미 정의당 의원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바탕 소란을 겪은 뒤 열린 28일 회의에서 정의당을 뺀 야당의원들은 근로기준법부터 처리하자고 했습니다. 이에 반해 간사합의안에 반대했던 여당 일부와 이정미 의원 등은 “근로기준법에 관한 이견이 많으니 이견이 적은 건설근로자법부터 논의하자”고 다시 제안합니다. 그러나 신보라 한국당 의원은 “건설근로자법 개정안에 동의할 수 없다”며 논의 순서를 앞당기는 데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결국 근로기준법 먼저 논의하게 됐고, 합의가 안되면서 파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날 처리가 유력했던 법률 가운데는 건설근로자법만이 아니라, 재직기간 1년 미만인 노동자에게도 근속기간에 비례해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도 있었습니다. 한국당과 민주당이 같은 취지의 법안을 내놓았기 때문에 이 역시도 ‘최소 근속기간’에 대한 합의만 이뤄지면 통과가 가능했던 법안이었으나 처리되지 않았습니다.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을, 국민은 국회를


이런 소식이 국회 밖에 있던 건설노조 조합원 2만명에게 전해졌고, 법 통과를 누구보다 원했던 노동자들이 마포대교를 점거하는데 이른 것입니다. 회의가 끝난 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의원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국회 합의가 모두 수포가 된 책임은 전적으로 더불어민주당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근로기준법 개정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통일을 이루지 못해, 이미 간사간 합의를 이룬 법안마저 처리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죠. 29일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건설노동자 고용개선 논의가 한국당의 거부로 무산됐다”며 “추운 날씨에 국회 앞에 모인 건설노동자들의 간절한 바람을 저버린 결과”라고 화살을 반대로 돌렸습니다.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을 탓하면 그만이라고 한다면, 국민은 국회를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재희 건설노조 선전실장은 말합니다. “마포대교 때문에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래도 한 말씀만 드리자면, 죄송합니다만, 저희도 국민입니다. 건설근로자법이 개정되면 임금체불을 막고, 투명한 건설현장을 만들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런데 이를 막고 있는 건 국회입니다. 건설근로자법,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